서로 멀어지고 고립되고 있는 청년 세대들
청년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관계였다. 나의 꿈과 취향, 인생에 대한 고민이 폭발할듯 중요해지면서도, 주위 사람들과 주체적으로 깊고 얕은 관계를 맺어야 했다. 같은 반이면 '친구'였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지지고볶던 시절과 달리, 20대부터는 강한 결속력 있는 소속 보다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관계 맺기'의 과제가 주어졌다. 누구도 알려준 적 없었던, 관계 맺기의 문제가 시작되었다.
나는 많이 미숙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시절의 친구 중 그렇게 깊은 사이로 남은 경우가 거의 없다. 서로를 응원하거나 지지하며, 때론 다투더라도 이어지며, 삶의 좋은 관계들을 쌓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엔 당면한 내면의 문제가 너무 컸다. 나는 너무 아무것도 아니었고, 무엇이라도 되는 게 우선이었다. 나와 다른 길을 가며 자기의 성취를 이뤄가는 친구들은 내게 일종의 조급함, 열등감, 불안감만 높였던 것 같다. 그럴수록 나는 혼자가 되어갔다.
사진 출처 - <사단법은 오늘은>의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
사단법인 오늘은에서 최근 발간한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를 보면, 최근 청년들의 입장도 그 당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청년들의 절반 가량은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있자 않다'고 답했다. 심지어 95% 이상이 우리 나라에 '서로 비교하는 문화가 팽배하다'는 데 보통 이상의 점수를 주었다. 역시나 95% 이상이 이기주의가 만연하다고 보았는데, 그야말로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 되었다는 걸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보고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관계실조'라는 말을 붙인다. 영양 불균형을 의미하는 '영양실조'에 빗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급속도로 '찢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상이자, 그 현상이 특히나 청년 세대 중심으로 급격해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청년들은 찢어져 있고, 고립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이어짐을 갈망하고 있다. 대부분 청년이 깊고 위로가 되는 관계를 갈망하지만, 상처받는 게 두렵고 관계가 어려워 관계에서 멀어져 있다.
사진 출처 - <사단법은 오늘은>의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
보고서의 흥미로운 점들을 더 살펴보면, 청년들의 90% 이상은 관계 맺기에서 '자신의 개성'을 지키고, '인정받는' 걸 중시한다. 그럼에도 90% 이상은 상처받는 걸 두려워 관계로 나아가길 어려워한다. 즉, 상대방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줬으면 좋겠고, 서로 그렇게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이상에 대한 갈망이 있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이 사회가 전방위적으로 개개인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보다는, 항상 평가하고 규정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무자비하게 평가당하며 비교당하던 트라우마에 말이다.
95% 가량의 청년이 정확하게 지적하듯, 우리 나라는 "서로 비교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이것은 거의 뼛속 깊이 새겨진 DNA 같은 것이라, 스스로의 의지로 극복이 불가능할 정도다. 상대를 만나더라도, 자산이나 권력, 사회적 지위 등으로 서로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평가한다. 모두가 그런 '머릿속 작업'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청년들은 아예 타인들의 '머릿속'에 들어가길 거부한다. 그렇게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의미 있는 관계 자체를 아예 갖질 못하는 상태가 된다.
사진 출처 - <사단법은 오늘은>의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
이는 청년들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적 책임이고 사회적으로 고민할 문제이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비교하며 찢어지는 것인지, 사회가 청년들이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인구구조 문제를 운운하며 청년들에게 단순히 지원금 한 푼 더 줄 고민을 하기 전에, 청년들이 서로 찢어지고, 함께하지 못하며, 연대하거나 함께살지 못하는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관계실조의 문제는 단지 외로움이나 개인의 내향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이며, 공동체 전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청년들이 서로를 회피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 의미 있는 관계조차 꺼리는 현실은 청년들 탓이 아니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평가받으며 자란 세대에게, 타인과의 진정한 유대는 ‘위험한 것’으로 각인돼 버렸다.
사회는 그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고립된 채 자라지 않도록, 관계를 맺고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책임은 사회 제도와 문화, 교육, 언론, 정책 모두에 있다. 연결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버텨내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한 세대 전체를 잃게 된다.
* 글쓴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사단법인 이사장이자 청년창작권리센터(YCRC)의 센터장으로 있다. <청춘인문학>,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사람을 남기는 사람>, <AI, 글쓰기, 저작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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