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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청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의 사회

이완
2025-08-12

2016년 1월, 천안의 한 모텔에서 30대 남성 A가 죽었다.1) 시신을 발견한 것은 모텔 종업원이었다. 경찰은 시신 옆에서 유서를 발견했다. 유서에 따르면, 공시생은 가족에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하고 가짜 출근을 반복한 듯했다. 월급이 없었을 테니, 생활비를 빚으로 충당한 모양이었다. 죄책감과 압박감 사이에 혼자 끼인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2003년 이래로, 매해 청년 3000명 정도가 자살하고 있다.2) 청년 인구가 자살자보다 빠르게 줄어든 탓에, 최근 10만 명 당 청년 자살자 수는 IMF 외환위기 때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그 중 절반 가까이는 학생이거나 무직자다. 국제보건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자살할 때 스무 사람이 한 번 이상 자살을 시도한다.3) 다시 말해,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한 청년은 매해 수만 명에 달할지도 모른다.


자살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고난에 혼자 방치되었다고 느끼면 심각한 자살생각이 떠오른다.4) 그래서 자살을 알코올,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과 묶어서 ‘절망사’라고도 부른다. 흔히 자살을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돌려서 말하지만, 자살은 절망의 증상에 가깝다. 코로나 19에 걸리면 두통과 인후통을 느끼는 것처럼, 심각한 절망에 빠지면 자살생각을 느낀다.


“결국,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자살을 시도하는 것일 뿐, 결코 죽음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 고 임세원 교수5)


따라서 청년 자살은 절망이 전염병처럼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청년은 절망에 내몰리고 있을까. 각자는 각자만의 이유로 절망하겠지만, 그 중에는 수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 특히 자살자 절반이 무직자라는 사실을 보면, 망가진 노동시장이 절망의 주요 감염원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기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 열 명 중 여덟 명 이상이 중소기업에 다닌다.6) 그런데 대기업 정규직이 100원을 받을 때, 중소기업 정규직은 58원을 받았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겨우 42원을 받았을 뿐이다.7) 일자리의 질 자체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2022년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5세 이상 취업자 중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19%에 달한다. 일본은 9%이고, 영국은 4%다.8)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율도 23%로 매우 높은 편이다.9)



심지어 일자리 자체가 귀해지고 있다. 1988년에는 구직자 한 사람 앞에 일자리 세 개가 있었다.10) 하지만 2025년에는 구직자 열 사람 앞에 일자리 세 개가 놓여 있다.11) 흔히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하지만, 지금은 일하는 자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런 와중에 주택과 주식 가격이 오르는 바람에, 노동의 가치만 바닥을 뚫고 떨어지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청년이 취업 자체를 포기하며 주저 앉고 있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나 번듯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월 400만 원’을 당연한 소득 수준이라는 듯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의 중위소득은 280만 원 수준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초반 노동자의 중위소득도 그 정도다.12) 다시 말해 청년 절반은 월 300만 원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월 400만 원이 사회의 표준처럼 자리잡아 버렸다. 목표는 높은데 달성할 수단이 없을 때 느끼는 감정은 우울함, 조급함 그리고 절망감이다.


“어떤 사람이든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행동을 취하거나 해결책을 찾겠다는 의욕이 떨어진다."

- 댄 애리얼리13)


이런 무기력한 상황을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다. 사단법인 ‘오늘은’에 따르면, 청년 열 명 중 다섯 명은 의미 있는 관계가 없고, 여덟 명은 관계맺기에 쓸 돈이 없다.14)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도, 20대와 30대 청년 열 명 중 둘은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않은 청년은 열 명 중 셋에 불과했다.15)


좋은 관계는 행복과 건강의 핵심이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사람과 긴 시간 안정된 애착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그런 관계를 위해 산다.16) 이런 욕구는 식욕과 수면욕에 맞먹는 사람의 기본 욕구다. 만약 좋은 관계에 속해 있지 않다면, 사람은 문제해결 능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더 자주 아프게 된다.17) 관계 부족은 사람을 자살로 내모는 결정적인 조건이기도 하다.18)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때로는 그 무게를 같이 한탄하면서 때로는 함께 거들어주는 관계가 있다면, 사람은 무기력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혹여 절망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내일의 불가능한 성공에 전념해야 하는 우리나라 청년에게 그런 관계는 사치다.


절망의 펜데믹 상황에서도, 흔한 자기계발 강사는 침을 튀기며 청년을 훈계하고 있다. 남 탓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최선을 다해 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일해서 자신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힘으로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초능력자가 아니다.


분명 누군가는 개천에서 용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극소수의 성공 사례만 보고 대사수의 실패 사례를 외면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 개천의 용이 어떤 천운을 누렸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모든 청년에게 풍족한 기회를 보장하는 곳이 아니고, 마음의 문제를 제 때 치료해 주는 곳도 아니다. 그런 곳에서 각자가 죄책감까지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주석]


1. “공무원 합격했다”…1년간 거짓 출퇴근 하던 30대, 유서 남기고 사망, 중앙일보, 2016.01.11

“공무원시험 합격했다” 거짓 출근 30대 자살, 충청타임즈, 2016.01.11

2. 통계청,「사망원인통계」, 2023, 2025.08.08, 사망원인(237항목)/성/연령(5세)별 사망자수, 사망률

3. 2019 WHO 자살예방 문헌집, 중앙심리부검센터 옮김

4. 토머스 조이너,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김재성 옮김, 황소자리, 2012

5. 임세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알키, 2016.

6. 중소벤처기업부,「중소기업기본통계」, 2022, 2025.08.08, 시도별·산업중분류별·기업규모별 종사자수

7. 고용노동부, 2024년 6월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결과

8. OECD Data Archive, Indicator: Temporary employment, Subject: 25-54 year-olds

9. OECD Data Explorer, Annual labour force survey, summary tables, Age: 15 years or over

10. 요코타 노부코, 한국 노동시장의 해부, 그린비, 2020.

11. 한국고용정보원 , 고용24 구인구직 및 취업동향

12. 통계청 , 2023년 임금근로일자리소득(보수) 결과

13. 댄 애리얼리, 미스빌리프, 이경식 옮김, 청림출판, 2024.

14. 사단법인 오늘은, 2024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

15. 한국리서치, [기획] 누가, 얼마나 외로운가? – 외로움 실태조사, 2024.

16. Roy F. Baumeister etc, The Need to Belong: Desire for Interpersonal Attachments as a Fundamental Human Motivation, the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Psychological Bulletin, Vol. 117, No. 3, 1995.

17. 전우영, 사회적 배척과 심리적 통증, 학지사, 2021.

18. 최장원 등, 3단계 이론을 적용한 청소년의 자살에 관한 연구. 한국정신건강사회복지학회, 정신건강과 사회복지 제47권 제3호, 2019, 64 - 66p.



* 글쓴이 - 이완


자살 예방과 기회 격차를 주로 연구합니다. 스무살 때 자살에 실패한 뒤로 자살 문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공부의 결실을 글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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