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청년] 사랑은 왜 어려울까
[사랑이 어려웠던 이유]
"원래 이렇게 연애가 힘들고 사랑하는 게 힘든 거예요? 일상생활 가능해요? 하는 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화제의 예능이었던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수많은 연애 예능 중에서도 이 프로그램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아마도 모두에게 있었을, 첫사랑과 같은 서툼과 진심이 느껴서이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들처럼 모태솔로였던 기간이 꽤 길었다. '모태솔로' 그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건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모태솔로라고 말하면 왠지 모르게 위축되곤 했다. 단지 '연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안쓰럽게 보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어느새 나도 그런 생각에 익숙해져 버린 건지, 이 프로그램에서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 '왜 모태솔로지?'라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사회에서 학습되는 신념이 이렇게 무섭다. 하지만 막상 그들을 보니 이유를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스토킹을 당한 경험, 아버지와의 상처 등 저마다의 아픔이 있었기에, 그들은 사랑을 하지 않거나 피했다.
그중 유난히 내 과거와 닮았던 한 출연자가 그런 말을 했다. "다른 사람에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는데, 저에겐 늘 근거 없는 수치심이 있어요" 그는 말했다. 감정을 표출하는 데 눈치가 보여서, 최대한 나대지 않으려 한다고, 그래서 그동안 감정을 꾹 눌러오며 살아왔다는 고백이었다. 프로그램 속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상처받을까 처음엔 거절도 잘 못했다. 반대로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혹여나 자신의 마음이 부담될까 조심스러워했다. 어쩌다 마음을 용기 내어 표현하는 날이면 “아, 그 정도의 마음은 아니었어. 부담 안 가져도 돼”라며 상대방에게 애써 해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 나랑 똑같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마음이 같지 않을 때, 그 부담되고 미안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에,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마음을 숨겼다. 숨기고 숨기다 가슴앓이가 심해지면 참지 못해 감정을 살짝 드러내곤 했다. 예를 들어, 그에게 약간의 호감이 드러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어떤 답이 올지 모르니까,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둔 채 한참 뒤에 보곤 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땐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감정 없는 척했다. 혹시나 상대방이 불편할까 봐.
그래서 사랑을 주저했다. 사랑에 빠지면 흔들리는 내가 싫었다. 혹시나 내 마음과 다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별로였다. '좋아한다'라고 말하면 관계가 무너질까 두려웠다. 남들은 그렇게 쉽게 잘하는 연애인데, 나는 왜 그토록 사랑이 조심스러웠는지 모르겠다. "난 사랑 없이도 괜찮아. 혼자서도 잘 사니까" 그렇게 나는 어느새 사랑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과거의 일이라 이젠 괜찮은 줄 알았던 마음에게, 이 프로그램은 툭툭 건드렸다. 원래 사랑이 이렇게 힘든 거냐며 돌아가면서 울고, 사랑에 빠져 금방 들떴다가 흔들리는 출연진들을 보며 사랑을 피했던 이유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왜 힘든 걸까?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일까?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사랑이 어려운 건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믿음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랑받지 못할 거야', '내 존재는 어딘가 잘못됐어', '내가 표현하면 상대방은 부담스러워할 거야'처럼. 내가 나에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누군가와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연애적 사랑뿐 아니라 가족·우정 같은 다양한 관계가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건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던 마음이, 사실은 많은 청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2024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의 46.8%가 “현재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라고 답했다. 우리 세대는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작 정서적으로 필요한 의미 있는 관계는 결핍된 상태다. 이 현상을 '관계실조'라고 부른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건 싫지만 멀어지는 것도 싫은 마음, 거리 두고 싶지만 연결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은 프로그램 제목과 닮아 있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우리는 어느새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캡쳐화면 인용
[멸종위기에 처한 사랑을 노래하다]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이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왔다네 정말로 아무도 안 믿었던 사랑의 종말론 / Back in the day,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사랑”
사랑은 점점 낭만의 영역이 아닌, 효율과 조건의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스와이프 한 번으로 사람을 만나고, 언팔 한 번으로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본래 지극히 비효율적인 감정이다.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씐다”는 말처럼,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랑 앞에선 모두 가능해진다. 그만큼 사랑은 낭만적이고, 비논리적이며, 무모할 만큼 진심인 감정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미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으니 깊은 관계는 피하고, 가볍게 만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만 찾아 헤맨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들처럼 존재하다가, 필요할 때만 다리를 놓았다가 곧 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의미 있는 관계를,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안전지대'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피했었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용기가 없었다. 그 마음 밑에는 '나를 드러내면 싫어할 거야'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그렇듯, 드러나야 치유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 속 '근거 없는 수치심'을 언급하던 출연자는 프로그램의 후반부에선 본인의 감정을 성숙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기꺼이 상처받아도 된다는 마음을 먹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그 출연자처럼,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는 믿음을 하나씩 파헤치다 보면 실제론 틀린 믿음도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에는 그 믿음이 진실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믿음도 많다. 물론 나에게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존재란 없다. 불완전하기에 완전하다. 우리가 드라마 속 인물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그러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랑을 시작할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원한다. 사랑을 찾고 있고, 멸종 직전인 사랑을 다시 기다리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꺼내야 한다. 상처받아도 다시 일어설 용기, 멸종위기인 사랑이 필요하다고 노래할 용기를 내야 한다.
사랑은 언제나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서 다시 사랑을 선택할 용기를 내본다. 노래 가사인 "사랑의 종말론" 대신 "사랑해 정말로!"를 외치면서.
* 글쓴이 - 틔우머/조안나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꿈이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삶의 반짝임을 발견하고 기록한다.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자기 사랑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명상의 여정을 함께 걷고 안내한다.
인스타그램 @teeumer
* [오늘청년]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 <오늘은, 청년예술>에서는 청년 담론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기고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chek68520@gmail.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