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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청년] 도태가 아닌 NAK-HA

임연주
2025-09-25

말했잖아 언젠가 이런 날이 온다면

나는 널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죄다 낭떠러지야, 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플지도 모르지만

내 손을 잡으면 하늘을 나는 정도

그 이상도 느낄 수 있을 거야

눈 딱 감고 낙하,하

믿어 날 눈 딱 감고 낙하, 우


-악동뮤지션(with IU) <낙하>



나는 살면서 때때로 이유 없이 불안해지는 날이 있다. 핸드폰의 알람에 맞춰 눈 뜨자마자 바쁘게 집안일을 시작하며 핸드폰으로 최신 뉴스 헤드라인을 검색한다. 집안일이 끝나면 모니터 앞에 앉아 수업을 준비한다. 또 찌뿌둥한 몸과 마음이 쳐지지 않도록 30분동안 가볍게 달린다. 중간중간에 내가 좋아하는 채널의 유튜브와 숏츠도 봐줘야 하고, 밥벌이 도구인 영어를 까먹지 않도록 EBS 라디오도 들어야 한다.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방전된 몸을 침대에 맡긴다.


내가 아무리 바쁘게 살았어도 세상은 눈 깜박할 사이에 더 빠르게 변한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잔뜩 늘어난 나의 새치만큼 인공지능을 도입한 신기술과 새로운 기종의 전자기기가 출시된다.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도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이미 뒤쳐졌지만 또 더 뒤쳐져 버린 것이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새로운 일자리나 자격증, 혹은 재무 정보를 핸드폰으로 검색해 본다. 나름 머리를 굴려 가며 생존 전략에 대해 고민하다가 밤을 꼴딱 새운다. 슬프게도 딱히 변한 것은 없다. 이렇게 나는 또 불안해져서 내 자신을 바쁘게 몰아 세운다. SNS에서 주변 사람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의 포스팅을 보고 자극은 받지만 스스로 실천하는 것은 많지 않다.

나는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걷든, 빠르게 달리던 더 빨리 움직이라고 나를 재촉한다. 최근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자주 소개해 주셨던 한병철의 <피로사회>라는 책을 지인에게 선물로 받았다. 우선 제목부터가 ’뼛속까지’ 깊게 공감되었다. 책 내용 자체는 조금 학술적인 측면이 있어서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도태되는 것이 두려운 나 자신이 왜 스스로를 채찍질해도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어느 정도 실감했다.



‘근대는 신과 피안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믿음까지도 상실하는데, 이러한 상황은 인간 삶을 극단적인 허무 속에 빠뜨린다. 유사 이래 삶이 오늘날처럼 덧없었던 적은 없었다. 극단적으로 덧없는 것은 인간 삶만이 아니다. 세계 자체도 그러하다. 그 어디에도 지속과 불변을 약속하는 것은 없다. 이러한 존재의 결핍 앞에서 초조와 불안이 생겨난다.’ 


한병철,<피로사회> 중-



이렇게나 빠른 세상의 속도는 우리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믿는 그 어떤 것도 허무하고 지속될 수 없다는 메세지를 주입시킨다. 그래서 개개인이 느낄 수 있는 현재의 즐거움만 추구하게 만든다. 우리의 끝없는 결핍은 우리를 외롭고 고립되게 만든다. 우리가 계속 무언갸를 삼키게 만든다. 스스로를 달래고자 필요 이상의 독한 술, 자극적인 음식, 도파민을 뿜어내는 컨텐츠, 지나친 소비비 등으로 밑빠진 마음의 장독에 물을 붓는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스스로를 갈아 넣어서 일한다. 남는 것은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뿐이다. 인생이라는 문장에 쉼표를 찍으면 망한 인생이라고 착각한다.


최근 컴백한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2021년 2월에 발표했던 ‘낙하’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에서는 악동뮤지션이 처음에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아래가 뒤바뀐 세상에서 그들은 햐늘을 향해 비상한다. 대중들은 처음에 음산한 느낌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어렵게 느꼈다. 그러나 이 곡은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팝노래’를 수상한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달해 주지 않았나 싶다. 특히 코로나로 인한 제한적인 일상생활이 길어져 갑갑하고 막막한 하루하루를 넘기는 대중들에게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세상의 박자가 아닌 자신만의 박자에 맞추어 사는 용기가 필요하다. 때때로 밀려오는 허무감을 억지로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허무와 비관적인 생각이 나를 잡아먹도록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묵묵히 희망을 향해 달음박질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실패 때문에 이 과정 속에서 넘어질 수도 있지만, 넘어질 것이 두려워 천천히 걷지 않으면 나만의 박자를 스스로 파악할 수 없다. 펭권은 날지 못하지만 뛰어난 수영선수이자 엄청난 길이의 거리를 장시간 이동할 수 있는 철인삼종 선수이다. 펭귄이 자신은 독수리나 공작새가 아니라고 안타까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 글쓴이 - 임연주(Instagram: @lyj9219)


INFP 91년 부산 사람. 영어강사 겸 작가다. 매일 춤추듯이 걸으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대학에서 동아시아 정치와 문화를 공부했다. 우울증 때문에 힘든 20대를 겪었다. 하지만 본인의 삶과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마음이 아픈 또래 청년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지금의 청년들이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전달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남편과 2021년에 결혼하여 즐겁게 살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엄마의 콩나물국과 남편이 끓여주는 라면이다.

- 이천시 도서관 제 4회 독후감 공모전 <쓰는 사람> 최우수상 수상(2025.5)
- 독립출판물 <겨롱겨롱_어느날 갑자기 겨롱을 결심하다>(2022, 이분의 일)

-브런치: https://brunch.co.kr/brunchbook/predixxxxxxscriptxxxxxxion

-블로그: https://blog.naver.com/jjanb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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