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년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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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청년예술 > 입니다.

[오늘청년] 가능성을 품고 쉬는 중입니다.

이광호
2025-10-02

우울과 알코올 중독을 경험하고 있던 20대 중후반 시기. 나를 불안을 증폭시키는 건 내 삶이 멈춰있을 뿐 아니라 사실상 후퇴하거나 밀려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이었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챗바퀴처럼 굴러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이 초조하고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회가 되는 일들을 마구잡이로 시작했다가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지 못해 소진되는 경험을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 지인의 소식이 들려오면 나와의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고, 내가 뒤처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버틸 힘이 없어 연락을 피하기도 했다.


회복의 시간마저도 효율적으로, 빠르게,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경험하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동료지원인(Peer-Support,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이 경험의 전문가가 되어 다른 사람을 지원하는 일)으로 일하면서 만난 청년들도 비슷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정신질환, 고립, 쉬었음. 그것을 무엇이라 정의하든 휴식과 회복, 혹은 성찰의 시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이를 선택하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먹고 살 만하니까 그런 거다'라는 식의 반응이 돌아오는 사회이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쉬어도 된다'는 말이 스스로도 공허하게 들린다.




현실적으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 놓인 당사자 청년들을 마주할 때면 무력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주거, 일자리, 빈곤 등 심리적 지지만으로는 바뀌기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기도 한다. 차라리 돈을 많이 벌어서 경제적 지원을 빵빵하게 하거나, 집을 한 채 사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게 심리적 어려움에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사자 청년들은 그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곤 한다. 예상보다 빠르게 사회로 복귀하기도 하고, 관계에서의 진전을 보이기도 한다.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자신의 정신질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장점으로 활용하려는 반가운 시도들도 보인다. ADHD를 진단받은 당사자들이 과집중, 자극 추구 등의 성향을‘제거’해야 할 '증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장점이 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는 것들이 하나의 예다. 광기를 무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재현하고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정신질환과 비정신질환의 경계를 무너트리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질환의 증상을 잘 통제하고, 사회 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노동시장으로 진입해 노동자가 되는 것을 '회복'이라고 정의했다고 한다면, 기존의 정의를 넘어 다른 방식의 삶을 지향하는 청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이러한 가능성들은 우리의 삶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며, 나의 삶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다듬어 현실 위에 새로운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한 방향으로 가는 컨베이어벨트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지더라도 잠시 머물 샛길을 만들 수는 있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어렵고, 두렵고,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아주 작고 미세한 선택이 물꼬가 되어 우리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력감이 심하던 시절. 하루 목표를 ‘하루에 한 번 양치하기’로 삼기도 했다. 머리 감기, 하루 세 번 양치하기라는 목표조차도 지키지 못해 자괴감을 느끼고, 자책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더 사소한 것, 더 작은 것으로 기대치를 낮췄다. 일어나서 머리를 감았다면 그걸로 하루를 이겨냈다. ‘오늘은 일어나서 머리를 감았어. 잘 했어.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날이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질척이는 무력감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당사자 청년들은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무척이나 애쓰고 있다. 정신질환, 고립, 쉬었음. 그것을 무엇이라 말하든 그 안에는 더 잘 살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청년 시기에 정신질환을 진단받아도, 고립의 시기를 보냈어도 또다시 길을 내어 나아갈 수 있다. 우린 그런 존재다.



* 글쓴이 - 이광호


펭귄의 날갯짓 이광호입니다.

펭귄의 날갯짓은 정신질환 및 고립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청년 당사자 중심의 단체입니다. 현재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동료지원쉼터 ‘친구네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체에서는 공동대표, 쉼터에서는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동료지원가는 자신의 정신질환 회복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정신질환자 등에게 상담과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동료지원쉼터에서 1:1 동료지원상담을 제공하고, 자조모임과 스터디 등의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오늘청년]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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