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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청년] 청년의 끝자락에서

이목
2025-10-16

“나이가 좀 있으시네요?’ 면접관이 말했다. 노련한 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되려 어색한 미소가 먼저 나왔다. 최종 면접이 시작되었다. “경력도 이렇게 많은데 신입으로 지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상사의 부당한 지시사항이 있다면…” 나이 많은 신입지원자에게 흔히 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임원들의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답변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평가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것이다.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어 도전한 인생 첫 공채 면접에서도 그랬다. 옆에는 대학을 막 졸업한 지원자가 함께 있었다. 내 나이보다 적어도 8살은 어릴 그녀는 침착하고 담대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반면 붙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에 내 손과 목소리는 떨렸다. 청년의 끝자락에 서있는 신입이었다.


가장 책임자처럼 보이는 중년 남성이 물었다. “중간에 공백기가 있는 데 이유가 있었나요?” 내 이력서에는 약 10개월 정도 비어있는 기간이 있었다. 이력서에는 무엇하나 적혀있지 않지만 나에게만은 의미있고 필요했던 공간이었다. 나는 대답했다.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꿈이 많아서, 방황을 좀 하고 쉬었습니다." 바로 아차 싶었다. 회사의 임원은 안정적으로 회사에 남아 오래 일해줄 사람을 찾을 것만 같았다. 그들에게는 방황하는 사람이 아니라, 착실히 회사의 인재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쉬었던 사람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사단법인 오늘은 '2025 쉬었음 청년 연구보고서' 중]



사단법인 오늘은의 '2025 쉬었음 청년 연구보고서'에도 이러한 인식이 나타난다. ‘쉬었음 청년’이란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취업자나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청년 중에서 지난주 활동상태에 대한 질문에 ‘그냥 쉬었음’이라고 응답한 청년을 뜻한다. 쉬었음 청년 절반이상이 '나는 의욕이 있다'라고 응답했지만 '사회가 쉰 청년을 의욕 있다고 본다'는 의식은 10명 중 2명에 불과하다고 나왔다.


[사단법인 오늘은 '2025 쉬었음 청년 연구보고서' 중]



학교를 다닐 때도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가족을 위해 또 경제적 독립을 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잠시 일을 쉬었다. 그 당시에 일 자체가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말 그대로 쉼이 필요했다. 어딘지 모르고 달려오기만 한 나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의 이커머스 지원사업을 통해 교육을 받기도 하고 혼자 금융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학교나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기간은 처음이라 생각보다 불안했기 때문에 바로 교육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아차 싶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면접관은 또 물었다. "그런데 왜 다시 회사로 돌아왔나요?" 고민이 되는 질문이었다. 면접관에게 잘 보이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렇게 답해야 할까 저렇게 답해야 할까 고민하다 포장 없는 솔직함으로 나를 보여보자고 생각했다. 꾸며지지 않은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2주 정도 쉬다 이커머스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저랑 적성이 잘 맞지 않아서 다시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면접관은 웃으며 말했다. "좋은 경험 하셨네요. 알겠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후회와 상실감에 빠졌다. 그 해 마지막 남은 면접을 망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우리는 때로 남들의 생각을 넘겨짚고는 한다. 나 스스로 시선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선에 갇히기도 한다. 지금의 우리 시대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SNS를 보면 요즘 유행하는 러닝처럼 누군가는 멋진 신발을 신고 저 멀리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는 것 같다. 나만 숨이 차올라 멈춰서 땅을 바라보는 것 같다. 가끔 내 신발은 너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진부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가 잠시 멈추었던 사실을 받아들여줄 사람도 분명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청년의 끝자락에서 신입이 된 어느 누군가도 있다. 세상은 급변한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분야를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청년 세대를 넘어간 어른도 기필코 신입이 된다.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줘야 한다.



* 글쓴이 - 이목(Instatram: @imok.note)


20대는 엔지니어로 30대는 데이터 분석가로 살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즐기며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좋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글쓰기라는 인생 도구를 만나 출근길 에세이를 쓰곤 합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imokwriter

-문의사항: imokiml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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