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청년] 음악과 숲 사이에서 - 싱어숲라이터 이서영 인터뷰
‘싱어숲라이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숲 해설가’와 ‘싱어송라이터’의 합성어로, 이서영을 수식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이다. 노래와 숲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박자를 발견하고 탐구하며, 사람들에게 감응하자며 말을 건네는 게 그녀의 일이다. 자신의 방향과 속도대로 묵묵히 길을 만들어가는 청년 예술가. 이서영의 발걸음을 따라가 봤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셨다고요.
어머니께서 음악을 좋아하신 덕에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집에는 늘 음악이 흘렀죠. 대학 전공을 선택할 때도 무조건 실용음악과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저는 곡을 쓰고 연주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싱어송라이터 파트를 택했어요. 음악으로 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처음 앨범을 낼 때가 언제였어요?
2018년에 대학 졸업하고 1년 뒤에 냈어요. 한동안 음악을 안 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했어요. 음악하는 게 괴로웠어요. 어느 순간 0에서 시작하는 창작의 과정이 고통스럽고 세상에 내 음악이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더라고요. 음악을 쉬면서 사회복지 쪽에 관심이 생겨 사이버대학교 강의도 듣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다시 음악해야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먹게 된 거예요?
사회가 너무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제 안에 쌓인 불만을 배설하는 행위가 음악이었단 걸 깨달았어요. 음악을 해야 ‘내가 살아있다’라는 감각을 느꼈어요. 대학 시절에 녹음해 둔 곡을 2019년 되어서 발표한 이후로 해마다 곡을 냈어요.
대학교를 졸업한 전후로 곡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나요?
완전히 달라졌죠. ‘허물벗기’라는 앨범을 냈어요. 곤충은 뼈옷을 입고 태어나잖아요. 성장하려면 딱딱한 옷을 벗어야만 하는데 저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것 같더라고요. 조용히 홀로 사투를 벌이는 듯한 마음으로 ‘공무도하가’, ‘어깨’, ‘도망자’라는 곡을 이 앨범에 넣었어요. 제 안에 있는 어두운 면을 좀 털어내고 싶었죠. 동시에 저만의 음악적 색을 좀 더 드러내고 싶었어요. 돌이켜 보면 그때의 저를 보여주는 게 너무 두려웠는데 해낸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 곡을 다 만들어놓고 발표를 못 하는 음악가들이 꽤 많거든요.
음악을 정성 들여 만들었는데 내보이기 어려운 이유가 궁금해요.
‘이 노래를 내가 세상에 내보여도 되나?’ 싶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제 음악은 어렵다는 피드백을 꽤 받았거든요. 사람은 유쾌한데 음악은 왜 우울하냐고 묻더라고요. “음악도 그럼 덩달아 가벼워야 하나?” 싶은데 지금은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저에게 단 하나의 모습만 있을 순 없으니, 어떠한 모습이든 스스로 미워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러니 가벼운 노래도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달리는 마음> 커버 ©이서영
회사에 속한 게 아니다보니 ‘언제 무엇을 할 지’ 내가 다 정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결정하고 일정을 관리하세요?
앞으로 나아가도록 마음을 먹게 해주는 사람들이 때맞춰 등장하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1:1 숲 해설 프로그램에 한 고등학생이 찾아왔는데, ‘달리는 마음’이란 제 노래를 먼저 알고 신청하셨다는 거예요. 제 노래를 먼저 알고 숲 해설 프로그램에 찾아오는 분은 이분이 처음이었어요. 이 노래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치열하게 해나가는 과정을 보고 감동해 만든 노래인데, 비슷한 마음을 느끼셨대요. 그분을 위해서라도 내가 가만히 멈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얼른 다음 곡을 만들어야겠더라고요.
음악 활동을 이어오다가 2021년부터는 숲 해설을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그 길을 걷게 됐어요?
아버지께서 가만히 텃밭 가꾸시는 모습을 봤는데 귀찮다고 말씀하셔도 계속하시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기웃거리다 저도 재미를 느꼈어요.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숲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자연, 생태 도서 전문인 출판사 ‘목수책방’에서 나오는 책을 주로 읽었는데, 현장에 나가서 배워보고 싶었어요. 2021년 3월에 숲연구소라는 곳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숲 해설 프로그램을 하면서 어떤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시나요?
단순히 나무의 이름이나 생김새만을 이야기하진 않아요. 오히려 숲에 있는 생명체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화를 나눠요. 사람보다 더 오래 이 지구상에 살아온 존재들인데 지금까지 이들이 남아있다면 현명한 비책이 있을 거라고 봐요. 불안한 시절을 통과하는 청년들이 숲의 지혜를 발견하고 삶에 적용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서영
음악과 숲의 공통점이 있다면요?
가장 자연스러운 제 모습이 보여요. 최대한 할 수 있을 때 하고, 아니면 말고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해요. 내가 지금 쉴 때인지 달려야 할 때인지를 알아가며 힘쓰는 게 음악을 하거나 숲해설을 할 땐 그렇게 힘들지 않더라고요.
너무나 다른 영역의 일인데 이걸 병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어요.
두 일이 균형 있게 작동해야 제가 제대로 기능할 것 같은데, 가끔 이 균형을 잡는 게 어려울 때가 있어요. 특히나 요즘은 어떻게 사람들을 숲으로 모을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숲에 관심을 두게 하려고 도예나 다른 활동을 결합해서 프로그램을 궁리하고 있는데, 본질인 숲보다 그 주변의 것에 골몰하는 저 자신을 보고 혼란스럽더라고요.
현실적으로 불안감을 느끼진 않나요? 그런 이유로 예술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일은 아니다 보니 불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근데 조직 생활을 하는 것보단 차라리 현실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게 더 낫다고 봤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가 저를 통제하거나 위계로 압박하는 게 싫더라고요.
제가 음악과 숲 해설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걸 해야만 살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어요. 쓸모라는 기준으로 나눌 수 없는 가치가 내 안에 있는데, 그걸 놓치지 않아야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각자 자기만의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청년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려면 어떤 게 더 필요할까요?
홀로 창작하고 골몰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다른 예술가를 만나 소통하고 교류하는 과정이 있어야 고립감을 덜 느낄 수 있어요. 어려움을 나누면 가야 할 길을 재정비할 때 도움도 되고요.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공연이나 음원 제작과 관련해서 실질적으로 더 많은 예술가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예산을 지원해주면 좋겠어요. 대신 아주 질 좋은 기회, 합리적인 보수를 약속하는 조건에서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봄에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에서 산책도 하고 공연도 해보고 싶어요. 먼 훗날에는 저만의 숲 학교 공간을 꾸미고 싶어요. 작은 산이 근처에 있으면 더 좋고요.
이서영 인스타그램 @leesyoung.kr
* 글쓴이 - 안온
평일에는 콘텐츠를 만드는 직장인으로, 주말에는 숲의 의미와 재미를 나누는 사람으로 지낸다.
인스타그램 @_onigraphy
* [오늘청년]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 <오늘은, 청년예술>에서는 청년 담론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기고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chek68520@gmail.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