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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청년] 파스타가 되고 싶어

임제희
2026-02-05

며칠 전 좋아하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처음 보는 메뉴를 주문해보았다. 이름도 생소한 ‘토마토 부라타 탈리아텔레’. 탈리아텔레가 뭔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토마토 소스가 넉넉히 깔린 접시 위에 파스타 면과 주먹만 한 치즈가 먹음직스럽게 올라가 있을 것 같았다. 메뉴판엔 사진이 없었기에 느낌 적인 느낌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곧 나온 음식을 보니 당혹스러웠다. 접시에는 푸짐한 토마토 소스 대신 작은 토마토 몇 개가 으깨져 있었고 소스가 없는 허여멀건 면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기대했던 부라타치즈는 푸짐하기는커녕 치즈 하나를 찢어 옆 테이블에 절반은 나눠 준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탈리아텔레는 알고 보니 내가 싫어하는 넓적하고 기다란 면발의 이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거 시킬걸. 일행과 투덜거리며 포크로 한 술 떠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를 잠시, 우리는 곧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야, 이렇게 맛있다고?


잘 익은 토마토는 상큼하면서 살짝 달짝지근 했는데 껍질을 벗겨 놓으니 부드러웠다. 토마토를 적당히 으깨 놓으니, 즙이 면을 가볍게 감싸고 스며들어 싱겁지 않고 간이 잘 맞았다. 시판 소스처럼 거슬리게 너무 달거나 짜지도 않았는데, 음식 프로그램의 패널 들이 극찬하던 ‘재료본연의 맛’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알 덴테’로 익혔다는 면은 겉과 속이 모두 적당히 단단하고 넓적해서 퍼지지 않고 씹는 맛이 있었다. 거기에 부드러운 치즈까지, 돋보이는 강렬함은 없지만 모든 재료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달고 짠 소스로 뒤덮인 음식을 예상했는데 갑자기 갓 지은 쌀밥 같은 단출한 파스타가 나온 느낌이었다. 별거 없어 보이는데 왜 맛있는 걸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문득 이 파스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녹진한 크림소스나 매콤한 칠리소스 같은 강렬한 꾸밈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완벽해지려고 지나치게 치장하지 않은 모습,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솔직함. 눈에 띄는 화려함은 아니어도 자기 고유의 모습을 편안하게 드러내는 것이 매력적인 사람.


힘을빼고있는그대로의내가되는법


왜 뜬금없이 거추장스러운 소스를 벗어던진 담백한 파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까.대학원에서 집단 상담 수업을 듣던 때가 떠올랐다. 수업이 끝난 후 모두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에게 돌아가며 피드백을 해주던 어느 날이었다. 내 차례가 돌아오자 문득 개인적인 친분이 없던 선배 하나가 나에 대한 기억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2년전 대학생이던 나는 선배가 조교로 있던 수업을 수강하고 있었다. 선배 눈에 비친 내 모습은 반듯하고 성실하지만 무언가 잘못될까 봐 항상 긴장하고 있었고 그게 인상적이었다는 피드백이었다. 심리학과 수업은 인기가 많아 수강생이 아무리 적어도 50명은 되었는데, 선배와 모르는 사이인 내가 그중에서 눈에 띌 만큼 경직되어 있었다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수강생 모두가 하하 웃으며 그 피드백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언제나 부족한 점이 없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돋보이고 싶다기보다는, 나의 결함이 혹시라도 드러날까 봐 꼭꼭 숨기고 싶었다. 실패해서 틈이보이면 상대의 신임을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약점을 잘감추고 포장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더 긴장한모습만 보였다니 이럴 수가.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상상해보니 한없이 안쓰러웠다. 책 잡힐까 봐 전전긍긍 하며 노력하는 모습은 마치 몸은 내놓은 채 얼굴만 겨우 가리고 다 숨었다고 여기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제 그 아이를그만괴롭혀야겠다생각했다.


오랜 시간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살았으면서 갑자기 편안하게 풀어지기란 쉽지 않았다. 완벽한 모습이란 사실 내가 정한 틀일 뿐이었으므로, 마음을 가볍게 하려면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솔직해야 했다. 원래 내 모습이 아닌 것들을 나 자신에게 묻고 확인해가며 하나씩 내려놓았다. 굳이 많은 걸 감추지 않아도 별 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 하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무토막처럼 삐걱대며 긴장하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풀어진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물론 나도 모르게 꾸덕꾸덕한 로제 소스 속에 숨어버릴 때도 있고, 고기가 잔뜩 든 라구 소스로 치장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는 소스를 걷어낸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지내는 삶을 살아야겠다. 솔직 담백한 ‘토마토 부라타 탈리아텔레’파스타처럼.


글쓴이 - 임제희 (사단법인 오늘은 아트퍼스트-글쓰기 클래스 참여자)

상담하는 사람이며 교사입니다. 날카로운 생각으로 포근한 말과 글을 내놓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본 글은 아트퍼스트-글쓰기 클래스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빅이슈 323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오늘청년]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 <오늘은, 청년예술>에서는 청년 담론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기고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chek68520@gmail.com으로 원고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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