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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청년] 나는 아직, 번데기

홍다은
2026-02-12

늦 봄에 들어서며 과학실에 식구가 늘었다. 주인공은 바로 배추흰나비. 3학년 아이들과 ‘동물의 한살이’ 라는 단원을 공부하는 덕분에 같이 살게 된 친구들이다. 아이들은 노란 옥수수 알갱이 같은 알에서부터, 애벌레와 번데기 단계를 거쳐 어른 벌레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관찰하며,배추흰나비의 한살이를 가까이에서 함께 한다.

생명을 키우는 데에는 책임감과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긴장했을 마음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시작하기로 했다. 선정한 노래는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 쉽고 즐거운 멜로디에, 나비의 한살이를 시적으로 읊는 가사까지. 본격적으로 배움에 들어가기 앞서서 같이 부르기에 더할 나위 없는 노래다.

과학실 음향이 어찌나 빵빵한지, 밴드의 음악을 듣기에 제격이었다. 가슴을 울리는 드럼 소리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기타 소리에 아이들도 노래에 빠져든다. 아예 후렴구에서는 연필을 마이크 삼아 붙잡고 열창하는 아이도 있다. 한 번으로는 아쉬워하는 기색이길래 다음,그다음의 과학 시간도 ‘나는 나비’로 열었다. 노래에 익숙해지고 나니, 의외로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부르는 부분은 후렴이 아니었다.


살이 터져 허물 벗어

한 번 두 번 다시 

나는 상처 많은 번데기


배추흰나비의 한살이 과정을 열심히 공부한 덕분일까? 아니면, 처음에는 지우개 똥만 했던 애벌레가 네 번 허물을 벗고는 면봉만큼 통통해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걸까? 꽤 어려울 수 있는 가사인데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탈 바꿈 하는 부분을 아주 또박또박 부른다. 승환이의 그 옹골찬 입 모양을 보고 있자면, 자라나기 위해 애쓰는 애벌레 같아 귀여우면서 묘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아직 허물을 벗던 열여섯의 내가 이 노래를 처음 알게 된 때와 겹쳐 보인다.


각자의 속에서 얼마나 애쓰는지, 이제는 알기에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던 해, 우리 학교에 대학 시절밴드 동아리를 하던 젊은 선생님이 부임하시며 없어졌던 밴드부가 부활했다.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돋보이고 싶던 나는 용기를 내어 단짝 친구와 함께 밴드부에 지원서를 내밀었다. 친구는 보컬, 나는 키보드. 운이 좋게도 합격이었다. 색다른 추억과 낭만이 깃든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학년을 보낼 생각에 한껏 엉덩이가 들썩였다.


밴드부 활동은 상상했던 것만큼 유쾌하진 않았다.당시 우리는 2학기에 있을 축제 무대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연습을 시작했는데, 다들 자신이 더 멋져 보이는 무대를 꾸리기 위해 저마다의 욕심을 부리곤 했다. 아무리 봐도 내 친구가 노래를 더 잘 하는것 같은데, 우리는 틈 날때 마다 모여서 연습했는데, 동갑내기 남학생으로 구성된 팀이 마지막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게 흐름에 맞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팀이 연주했던 곡이 바로 ‘나는 나비’였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노래 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단순 명료한 멜로디는 가슴을 뛰게 하고, 가사도 희망차서 마지막 곡으로 완벽하긴 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때는 괜히 볼멘소리가 나왔다. 원래 인기 많은 애들이니까 대충 해도 무대에서는 큰 박수를 받겠지? 악기 메고 학교를 어슬렁거리는 게 그냥 겉멋만 든 것 같은데,너희들이 어떻게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겠다는 거야. 세상을 호령 할 듯이 두 팔을 쫙 펼치고 후렴을부를때면 그렇게 눈꼴 실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욕심이 불러온 오만한 시선이었다. 우리는 모두 결국 무대라는 한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는 걸 간과했고, 와중에 나만 더 고군분투하는 줄로만 착각했다. 마치 세상 모든 번데기는 어른벌레를 향해 껍질 안에서 저마다 노력하는데, 저들끼리 키재기를 하는 꼴 이었다. 누가 더 먼저, 더 멋진 나비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허물을 벗고, 지난한 기다림을 견디는그 자체를 보듬어야 하는 것을.

그들 중 하나는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걷고 있다는 근황을 들었다. 다 자라고 보니,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나비가 되었다. 아니지. 같은 밴드부에서 그는 음악인이 되었고, 나는 아니라면 나는 아직 번데기일 수도, 생각지 못했던 모습의 나비로 우화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괜찮다. 세상에 많고 많은 애벌레가 모두 똑같은 시기에 완벽한 모습으로 나비가 될 수는 없기에.

초여름에 들어선 요즘, 아이들이 자기네 반 배추흰나비의 상황을 업데이트 하러 과학실에 종종 놀러 온다.듣자 하니, 전부 나비가 되어 날려 보내주었다고 한다. 과학실 번데기는 아직 소식이 없다. 그 속에서 얼마나 애쓰는지 이제는 알기에, 남들보다 늦게 나비가 되어도 괜찮다. 날개 돋이에 실패하더라도 그걸로 충분하다. 분명 누군가는 나비가 되기 전, 한 번 두 번 허물 벗어 상처 많은 번데기가 되려 했다는 구절을 꼭꼭 씹어 부르면서 기억해줄 테니.


글쓴이 - 홍다은 (사단법인 오늘은 아트퍼스트-글쓰기 클래스 참여자)

배움의 숲을 가꾸며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교사입니다.단단하고 여유로운 ‘삶길’을 걷고자 꾸준히 읽고 쓰려 합니다.

*본 글은 아트퍼스트-글쓰기 클래스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빅이슈 324호에 게재 되었습니다.

* [오늘청년]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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