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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청년] 회귀본능:백투부산(Back to Busan)

김나경
2026-09-01

부산이 지겨웠다. 너무 오래 살아버린 도시였다. 23년 동안 부산, 그것도 남구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녔다. 주말엔 광안리에 가고 주중엔 경성대 부경대 거리를 걸었다. 바다도, 공원도, 문화회관도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내 생활 반경은 2호선이다' 정도. 그래서 이 도시를 한 번 떠나보고 싶었다. 부모님의 통제에서 벗어나 오롯이 독립된 삶을 살고 싶었다.




24살에 나는 취업에 성공했고, 부산 지사와 모 혁신 도시의 본사라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왠지 모르게 본사에 가면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탄탄대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나를 뜯어 말렸지만 나는 부산 생활에 너무나도 권태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희망 부서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전부 본사만 써버렸다. 결국 나는 본사에 발령을 받았다.


타지에서의 첫 시작은 너무 나도 재미있었다. 공채로 입사해 동기만 서른 명이 넘었다. 우리는 늘 네다섯 명씩 무리를 지어 서로를 소개해 주고 퇴근 후에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술을 마셨다. 주말이 되면 근방의 큰 도시로 넘어가 방탈출 게임을 하거나 포차 거리를 돌고, 노래방에서 늦게 까지 놀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동기들도 개인의 삶이 있었고, 그들에겐 나말고도 중요한 존재들이 곁에 많았다. 이방인인 나에겐 회사 동료인 그들 밖에 없다는 사실이 점점 크게 느껴졌다. 향수병에 걸린 나는 3년 동안 2주에 한 번씩, 금요일 퇴근만 하면 왕복 10시간을 들여 부산 본가를 오가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나라에선 수도 자그레브보다 관광지 두브로브니크에 일자리가 많아 평일엔 두브로브니크에서 일하고 주말에 고향 자그레브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어느 순간 그들과 내가 겹쳐 보였다. 나도 이주노동자인가 싶었고, ‘나도 이주노동자’를 줄여 ‘나노자’라는 말을 만들었다. 동료들과 그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쓰다가 ‘나노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주문 제작해 여행을 가서 같이 입기도 했다.


 정겨운 사투리가 너무 그리웠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의 오지랖도 문득 생각났다. 걸어서 광안리로 넘어가 바다를 산책하던 생활 반경도 떠올랐다. 사람이 적당히 붐비는 그 거리가 자꾸 생각났다.


모 혁신도시는 흡사 애니메이션 스폰지밥에 나오는 비키니시티 같은 가짜 도시였다. 각종 공기업 본사들과 프랜차이즈가 줄지어 있었고 인공호수와 산책로를 조성해 사람이 안 미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구획해놨지만, 주말만 되면 도시가 고향인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리는 유령도시였다. 어떤 날은 주말 저녁에 헬스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기도 했다. 그럴 때면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번은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어 누구에게 전화 한 통 부탁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40분을 걸어 집에 도착한 뒤에야 분실 조치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병원이 많은 것도 그리웠다. 아무리 서울에 비해 부산의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지만 부산은 제2의 도시가 맞았다. 종합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아 진료를 받아야 했는데 적당한 의료기관이 없어 나는 연차를 쓰고 부산에 내려와 진료를 받곤 했다.


떠나보니 부산만큼 좋은 도시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부산에 일자리만 있다면, 노력한다면 집을 산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정 많은 사람들이 있고 버스와 지하철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도시. 나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주말마다 전포와 광안리를 오가는 삶을 다시 살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 후 다시 펜을 잡았다. 스터디카페를 다니며 이직을 준비했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아침마다 공복 유산소 운동을 했다. 주 3회 근력 운동도 했다.


문제는 부산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없다는 것이었다. 부산의 젊은이들은 부산에 일자리만 있다면 계속 부산에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이직을 준비할 때 부산권역의 경쟁률이 서울보다 높을 때도 많았다.


나는 필기시험에 붙어도 계속 면접에서 떨어졌다. 회사와 이직 준비를 병행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는 평생 부산에 못 돌아가겠다는 느낌이 강하에 들었고, 너도나도 말리는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부산 본가로 돌아와서 3개월 동안 스터디카페를 다니며 오롯이 공부에만 집중했다.


백수 생활은 불안보다 행복이 컸다. 평일에는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바다나 산을 보러 나갔다. 유엔공원에서 겹벚꽃을 보며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어떤 날에는 이기대 트레킹 후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김밥을 먹었다.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마주한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였지만 안정감과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곳이었다.



마음이 안정되니 공부도 더 잘되었고, 나는 3개월 만에 부산 모 회사 재취업에 성공했다. 돌고 돌아 돌아온 부산 라이프였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느끼는 행복감의 정도가 컸다. 퇴근 후 지옥철이나 버스를 타고 부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퇴근 후 광안리에 가서 야경을 바라보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할 때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다른 지역 사투리가 아닌 부산 사투리가 들리는 것도 그저 좋다. 부산이 지방 중에서 가장 빨리 소멸될 도시라는데, 나는 부산이 좋아 부산에 돌아왔으니 나처럼 부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고민해보고 싶다. 이게 내가 부산을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 - 김나경


이메일 - skrud3980@naver.com


이 글은 부산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051 청년시그널 글쓰기 모임을 통해 작성 되었습니다. 

YCRC 를 통해 게재 되는 글 외 많은 부산 청년의 이야기는 <청년시그널-부산> (10월 중 출간 예정)을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청년]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 당사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본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된 이미지 일부는 AI로 작업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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