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청년]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 돼
“우리 같은 사람은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된다.” 15년 만에 만난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친구는 구독자수가 50만을 넘는 유명한 유튜버이자 작가가 되어 있었고 반가움보다도 그 한마디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처음에는 그 말이 거칠게 느껴졌다. 마치 돈만 좇아야 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 곱씹어 보았을 때 그 말은 단순히 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사람과 기회, 정보와 문화가 함께 모인다. 결국 한 사람의 가능성도 그러한 돈의 흐름에 가까울수록 더 큰 자극과 성장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10년 뒤에 내가 어디서 살고 있을지에 대한 질문도 달라졌다. 나는 한 도시를 선택하는 대신 어떤 흐름 속에 나를 두고 살아갈지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날 친구와의 식사 자리는 또렷이 기억난다. 친구가 나를 데려간 곳은 요리사가 테이블 너머에서 회와 초밥을 한 점씩 손으로 쥐어서 내어주는 고급 일식당이었다. 결이 보이는 나무 테이블 위에 서빙된 물도 투명한 생수가 아닌 나무 테이블과 비슷한 갈색의 찻물이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백반집이었다면 무슨 물이냐고 물어봤을 테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괜히 잔을 한번 들어 올렸다가 천천히 다시 내려놓았다. 고소한 물맛을 음미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푸딩처럼 부드러운 계란찜을 먹고 나니 본격적으로 회와 초밥이 정성스레 우리 접시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초밥을 한 점씩 서빙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 어색해하고 있었지만, 친구는 덥석 그것을 집어 들어 익숙한 듯 밥알이 간장에 닿지 않게 살짝 찍어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음식의 맛보다도 친구가 이 자리를 대하는 태도를 더 오래 보게 되었다. 나는 자꾸만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빌려 입고 있는 느낌이 들었던 반면에 친구는 이미 이 공간의 결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듯 했다. 그 익숙함은 단순히 비싼 식당을 많이 다녀본 사람의 태도라기 보다, 사람을 만나 대접하는 방식까지 배운 사람의 여유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여유가 조금 부러웠다. 더 넓은 세계를 먼저 경험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처럼 보였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머무를 곳을 단지 편안한 어떤 도시가 아니라 더 많은 기회와 연결될 수 있는 흐름 자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10년 뒤의 나는 한 도시를 선택하기보다, 한곳에 기반을 두고 필요한 곳으로 움직이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왜 한곳에 정착하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미래의 내 모습은 오히려 그편이 현실적이고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내게 안정은 그 자리에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내 속도에 맞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부산은 내가 오래 머물며 살아온 도시다. 동시에 나의 정체성을 지켜준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이면서 여유가 있다. 빠른 경쟁 속에도 잠깐 물러나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인적 네트워크들이 물리적으로 가깝기도 하다. 서울에 있는 업체와 만나는 횟수보다 적게 보는 오랜 부산 친구들이 있다. 몇 달에 한 번씩 자리를 가지지만 그들이 부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이 많다. 여기에 가족도 빠질 수 없다. 목적 없이 나에게 꾸준한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나를 안정적으로 만든다. 누군가 무해하게 내 일상을 속속들이 알고, 그 속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느낌은 내게 큰 안식이 된다. 부산은 내게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단단한 삶의 기반이다.

그렇지만 나를 붙들어주는 도시만큼이나 나를 더 큰 세계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다. 대학교 시절, 서울에 기반을 두고 울산을 오가던 교수님들이 계셨다. 울산에는 돈이 많은 기업들이 모여 있었고 장학금이 빵빵한 연구 특성화 학교라는 이점 덕분에 전국의 출중한 학생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연구가 절실했던 교수들에게는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이 충분한 기회의 땅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사람이 머무는 곳은 단지 익숙한 곳이나 살기 편한 곳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자신의 가능성을 넓게 펼칠 수 있는 곳, 필요한 자원과 연결될 수 있는 곳으로 내 삶의 반경을 넓혀가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점에서 서울은 많은 사람과 정보 기회가 모여 나를 외부의 세계로 확장시켜주는 도시다. 내가 성장하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서울의 속도에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도가 나를 앞으로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사람과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때 혹은 더 많은 자극과 연결점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서울로 향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꿈꾸는 미래는 부산과 서울 중 하나를 선택하는 삶이 아니다. 부산에서 생활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다가도 언제든 새로운 기회를 얻거나 자극이 필요할 때는 정처 없이 서울로 떠나는 삶이다. 서울에서 뜨겁게 달아올라 말랑해진 감각을 부산으로 가져와 천천히 식히고 가다듬는 담금질의 과정을 거치며 내 삶의 형태를 만들고 싶다. 뜨거워지는 시간과 그것을 다시 식히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더 단단해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야돼” 이제는 이 말의 의미를 안다. 돈이 모인다는 것은 결국에는 이야기와 에너지가 모인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가야 할 곳은 단순히 돈이 많은 서울이 아니다. 내 가능성을 더 크게 실현될 수 있는 흐름의 중심일 것이다. 부산에서는 나를 지키고, 서울에서는 나를 확장하며 두 도시를 오가는 삶 속에서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그리는 10년 후의 내 모습이다.
글쓴이 - 도왕영
이메일 - dowangyoung@gmail.com
이 글은 부산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051 청년시그널 글쓰기 모임을 통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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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용된 이미지 일부는 AI로 작업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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